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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불황에 마른 수건 짜기/이재훈 논설위원

김신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4.08 17:16

수정 2013.04.08 17:16

[이재훈 칼럼] 불황에 마른 수건 짜기/이재훈 논설위원

참 요란하기도 하다. 박근혜정부의 제1 국정과제가 '창조경제'가 아니라 '세금 걷기'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요즘 신문 헤드라인은 온통 '탈세와의 전쟁' '사상 최대 세무조사' 같은 제목으로 도배됐다. 기획재정부가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업무보고는 복지공약 재원 마련을 위한 세수 확충방안 일색이었다. 국세청은 조사원 900여명을 동시에 투입해 대재산가, 불법 사채업자, 역외 탈세혐의자 등에 대한 대대적인 특별세무조사에 나섰다.

과거 정권도 출범 초기에는 사회기강 확립, 조세정의 구현 등을 표방하며 대기업이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에 대한 세무조사의 칼을 빼들곤 했다.

그래서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세금 걷기에 올인하는 형국이다. '증세 없는 복지'가 새 정부의 도그마로 굳어짐에 따라 복지재원 충당은 숨은 세원 발굴, 즉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의 대폭 축소 외에 방법이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있다. 깊은 경기침체 속에 출범한 새 정부가 경제부흥이나 국민행복을 구현하기 위한 장밋빛 청사진은 미처 제시하지도 못한 채 세금 쥐어짜기부터 시작하는 모습이라 딱하기만 하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자는데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세금 내지 않는 부의 축적을 막고 여기에 매긴 세금을 복지에 쓰자고 하니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어려운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마구잡이 세무조사로 타격을 받게 될까봐 걱정된다. 경기회복의 주역이 돼야 할 대기업들도 세금폭탄으로 경영이 크게 위축될 수가 있다. 자칫 세수 확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경제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하경제는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제활동, 세금을 내지 않는 거래다. '검은 돈'뿐 아니라 현금을 주고받는 노점상·시장상인의 거래, 일용직 근로자의 일당, 점포 권리금 같은 것도 지하경제에 포함된다.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5~30%가량으로 추계기관마다 제각각이다. 기재부는 20~25%로 파악하고 이 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10~15%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120조원가량의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신용카드, 전자거래가 자리를 잡은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비중이 이처럼 높은 이유를 전문가들은 높은 자영업자 비율에서 찾는다. 2010년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2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배에 육박한다. 이들 자영업자가 현금 거래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이 2005년 이후 10여차례 실시한 세무조사에서 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 탈루율은 48%였다. 영세 자영업자의 탈루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게 뻔하다.

정부가 120조원을 양성화하려면 이런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거래를 줄줄이 털어야 한다. 정부가 현금영수증, 전자세금계산서 의무발급 기준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 그 전초다.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악 소리가 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지하경제 권위자인 오스트리아 린츠대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지하경제는 세금이 높거나 규제가 심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며 "이를 양성화하려면 세금 감면 같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국회입법조사처도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 부가세 납무의무 면제금액을 높이고, 여기서 확보된 세수를 영세사업자에게 직접 보조해주는 인센티브제를 시행할 만하다고 권고했다.

통상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걷을 수 있는 세금이 연 3조~4조원이라고 한다. 이것을 국세청은 6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 같은 이는 "조세저항으로 큰일이 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연 30조원에 달하는 비과세·감면도 절반 이상이 서민·중소기업을 상대로 하는 것이어서 줄이기가 쉽지 않다.
'증세 없는 복지'를 선택한 순간부터 박근혜정부의 앞길은 형극의 연속이다.

ljhoo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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